한국의 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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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섭은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 주제는 인천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김보섭은 성장하면서 중국인들이 살았던 청관(차이나타운)의 시대적 사회적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그의 사진작업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95년 첫 사진집 『청관』과 이어서 2000년 청관의 화교 『한의사 강영재』를 두 번째 사진집으로 상재하고, 첫 번째 개인전(삼성포토갤러리, 1995)도 ‘인천 청관’으로 할 정도로 화교와 인연이 깊다. 『청관』을 시발점으로 그는 『바다사진관』 『수복호 사람들』 『신포동 사람들』 『자유공원』 등 인천의 여러 장소와 인천 사람들의 삶을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그가 인천 사람이고 인천만 찍어온 사진가라는 사실을 명백하지만 이번 『한국의 화교』 작업을 위해 그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화교학교와 화교들을 찾아다녔고, 대부분의 한국 화교들의 고향인 산둥성까지 다녀왔다. 한중수교 이후인 1995년 1월에 인천에 사는 화교 유연서(柳延瑞) 할아버지의 고향 방문에 동행했다. 그는 귀국 후 “그곳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그분들을 찍으면서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카메라는 그가 세상으로 나가는 창구였던 것이다. 그는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서 사진 속 사람들의 가족사를 줄줄이 꿸 수 있는 사진가다. 이렇듯 『한국의 화교』 사진은 화교들과의 끈끈하고 오랜 유대감(rapport)을 배경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화교들과 그 잔존문화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로서, 그들의 사람됨을 사랑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참 이웃의 자리에서 그들의 쇠잔을 그러나 아무 과장 없이 침착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진가 한정식의 『청관』 서문에서, 1995)
김보섭의 사진은 시간의 기록이라는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해석하고 재현하는 특유의 감성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인물사진에서 그 인물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묻어나오듯이 건물 사진에서도 그 이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방치되고 쇠락해가는 중화요릿집이나 화교학교는 화교 사회의 부침을 전해준다. 특히 작가의 감성이 잘 드러나는 오브제의 처리는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누렸던 삶을 반추하게 한다. 그는 화교 <한의사 강영재>를 촬영할 때 “장롱 서랍을 열어 보니, 부모님의 물건들, 집주인의 물건들, 사진들, 거울 등…. 청관의 과거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우리는 그 ‘청관의 과거’를 그가 찍어온 중화요릿집의 목재에서 알루미늄으로 변화해온 배달통, 낡은 도마와 프라이팬 등의 주방도구 그리고 경극 탈과 소도구 등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인물사진뿐만 아니라 오브제를 통한 우회식 접근법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집은 서사와 서정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넘어간다.
한 작가가 한 가지 테마에 몰두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40여 년 동안 진행해온 김보섭의 화교 사진작업은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거나 피상적으로만 보아왔던 화교 사회의 변천사와 가족사를 보여줌으로써 그들도 우리가 어깨를 마주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외국인 이주자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벽을 부수고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그들과 다정한 이웃이 되었다. 오래 기다리며 찍어온 그의 사진은 역경 속에서도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려온 가까운 이웃인 화교들에게 바치는 뜨거운 사랑과 경의의 표현이다.